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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평론



우화로 빚은 세계
신양희 아마도예술공간 큐레이터
이승호 작가는 두 번의 개인전 <나태꽃>(2017), <휴우(休憂)>(2019)를 열었다. 두 번의 개인전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와 자신을 통해 본 청년의 이야기, 나아가 도시를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작가는 학부 졸업 후 작업 활동과 취업 사이에서 고민하지만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현장에서의 일이었고 고된 노동 시간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은 쉬는 일이었다. 그러한 경험과 자신이 놓인 삶의 모습을 빗대어 조형화한 것이 기린이었고 최초에는 자화상과 다르지 않았다. 이 자화상은 청년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만나면서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고 드러내는 매개체가 되어 주었다.
첫 개인전의 전시명 ‘나태꽃’은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나 조건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을 가리키고, 작가는 그 현실에 안주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나태라고 규정한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도 다른 꿈을 꾸고 다른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를 꽃이라는 단어로 명명한다. 이러한 이중적인 심정을 대리해서 표현한 것이 기린이다. 우선 기린을 소재로 삼으면서 그 대상의 습성과 외형을 관찰하고 자신의 상황이나 모습을 대입하게 된다. 초식동물로서 공격성을 갖지 않는 순한 모습에서 힘들게 사회생활을 하던 자신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기린의 불편하고 불충분한 수면 습관은 휴식마저 편하지 못했던 자신의 상태와 같다. 나아가 기린에 투영된 자신의 모습은 동시대 청년의 모습과 같은 것이기도 했다. 사회의 질서에 적응해야만 하는 약한 자의 위치로서의 자신과 청년들의 모습은 힘이 없고 무기력하다. 그렇지만 작품을 통해서는 나약한 모습과 함께 그 현실을 넘어서려고 하는 의지가 표현되었다.
<불편한 휴식> 연작은 쉼조차 마음 편하지 않았던 심정을 기린의 수면 특성과 연결한 작업이다. 기린이 어떤 모습으로 잠을 자더라도 우리 눈에는 불편해 보인다. 작가는 그 모습을 그대로 연출함으로써 편하지 못한 상태의 휴식과 연결 짓는다. 그렇지만 인간의 자세로 늘어져 쉬는 모습도 함께 표현한다. <도(都)쉼>도 도시적 삶의 피로와 쉼을 표현한 연작이다. 기린의 몸통 부분에 집을 집적하여 도시와 기린을 하나의 덩어리로 표현하거나 풀과 같은 자연적 요소가 기린의 몸에 박혀 있는 모습도 표현되며, 아스팔트 위를 걷거나 나무 그늘에 쉬거나 건물 위에 앉은 기린 등을 인간의 자세로 표현함으로써 도시 생활에서의 쉼을 상상해낸다. 사회 초년생들이 처한 무기력이나 소외된 상태를 넘어 좀 더 적극적인 미래를 희망하는 작업이 <청춘 맞바람 1, 2>이다. 무엇이 다가오든 맞서고자 하는 당당함을 드러내고 위를 향해 고개를 든 모습에서도 다른 이상을 향한 의지가 표현된다. 이와 같은 작업을 통해 작가는 불안정한 현실에서도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다짐을 담으면서도 또 그 작품들을 바라볼 사람들에게 쉼과 위로, 힘을 전하고자 했다.
이 시기의 작업은 여러 재료와 색을 사용하고 형태를 다양화하며 작은 크기에서부터 큰 크기까지 기린이라는 하나의 대상을 다양한 결과물로 도출해낸 것이다. 스컬피를 이용해 형을 빚거나 폴리, 레진으로 성형하고, 나무를 깎는 등의 여러 방법을 취했다. 재료와 도색을 달리함으로써 형상들이 주는 분위기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감각을 드러낸다. 그리고 밝은 색감으로 표면을 처리함으로써 형상을 더 과장되게 드러나 보이게도 한다. <불편한 휴식 4>는 수백 개의 각목을 붙인 후 조각한 작업으로 기린의 상이 이상적으로 표현되었다고 느끼게 한다.
두 번째 개인전 <휴우(休憂)>도 첫 개인전 작업의 연장선에 있지만 조형적 표현이나 내용적인 면에서의 발전을 시도한다. 이전 작업에서 현실의 물리적인 괴로움과 희망을 직관적 조형으로 표현하였다면 이제는 안정된 삶을 갈망하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과 그 이면에 자리한 불안과 근심을 더 드러내 보인다. 형식적으로는 첫 개인전의 반복적인 표현을 지양하여 각 작품마다 질을 높이고자 했고 작업마다 메시지를 좀 더 분명히 담고자 했다. 기린의 캐릭터적인 표현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것을 벗어나고자 하는 면도 드러난다. 또한 작품을 받치던 좌대를 빼내려고 함으로써 작품이 보이는 방식에 대한 고민도 보여준다.
<도(都)쉼 7>은 기린을 변형하기보다는 간결하고 정확하게 묘사한 작업이다. 그렇지만 안정되게 서 있는 기린과 달리 그를 떠받친 느슨한 하부와 빈공간은 불안정한 도시적 삶을 암시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의 <무게>는 시멘트 위에 걸터앉은 기린이 자그마한 집을 이고 있는 모습이다. 이 작업은 집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 생각을 표현한 것으로 집의 작은 크기와 달리 억눌려 있을 수밖에 없는 역설적인 상황을 암시한다. <사려(思慮)>에서 어떤 고민에 대한 숙고는 기린이 턱을 괴고 힘없이 앉은 모습에 반영되어 나타나고, <중독(中毒)>은 자신이 가진 것 이상을 욕망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외부로부터 덧대어져 불안하게 길어진 다리를 가진 기린의 모습을 통해 풍자한다.
작가 자신이자 청년을 표현한 작업에서는 불안이나 좌절이 한층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청춘 맞바람 3>의 경우도 연작으로 이어진 군상 작업이지만 이전 작업에서 보여주었던 당당함과 달리 길을 잃은 것과 같은 좌절 혹은 비애를 느끼게 한다. 의도적으로 매끄럽지 않게 주석으로 주물을 뜨고 휘청거리듯 선 모습은 그들이 놓인 위태로운 현실을 상기하게 한다. 이전에 야외에 설치하기도 했던 <청춘맞바람-비상>은 애드벌룬으로 기린의 목 부분만을 제작한 것으로 꼿꼿한 자세와 하늘을 향한 시선은 앞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 작업이 전시장 안에서는 천정의 H빔에 의해 완전히 꺾인 모습으로 설치되었다. 이러한 의도적인 변형은 작가의 심리 상태와 현실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반영한다. 또한 H빔 위에 설치된 <hide&sick>도 비슷한 심정으로 제작된 것이다. 전봇대 보수 작업을 하던 청년이 추락하여 사망한 사건을 접한 후에 받은 충격을 자신이 일했을 때의 경험과 이은 작업이다. 고개를 들어야만 위태롭게 걸터앉은 기린과 그 옆의 안전모와 안전장비를 볼 수 있다.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숨겨져 있지만 슬픔이나 아픔이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심수(深睡)>는 욕조에 완전히 몸을 담근 기린이 깊은 잠에 빠진 모습이다. 그런데 입으로 연결된 물의 순환 장치는 편안한 휴식보다는 그 어떤 것이든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과 같은 모습을 드러낸다. 긍정적인 힘 혹은 희망에 대한 메시지는 <휴우(休憂)-Liberty>의 기린을 통해 엿볼 수 있지만 몸이 뜰 수 없을 정도의 작은 날개와 날기에는 부자연스러운 몸은 허공을 향해 부유한다. 구속된 현실로부터의 자유를 갈망하지만 쉽게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을 암시한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개인전은 첫 개인전보다 더 심리적인 불안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구체적인 이야기와 상황을 담고 있고 작업과 현실의 문제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였음도 보여준다. 작가는 두 번째 개인전 이후에도 기린의 형상에 이야기를 담아내는 작업을 이어간다. 그런데 기린의 형상에 묶인 자신을 보면서 창작가로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최초 기린의 외형이나 습성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자 했고 이를 조형으로 풀었다면 어떤 상황이나 사건, 감정을 기린의 형상에만 가두는 것이 제약이자 한계라고 자각하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 공공미술 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공부하면서 조각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게 되고 자신이 그간 해온 조각 작업이 재료나 형태 등 시각적인 것에 집중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최근에는 소조를 이어가면서도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설치적인 연출을 더한다. 이전에 넥타이, 명찰, 시계 등이 조각의 부분적 역할을 차지했지만 이제 실물 오브제가 적극적으로 서사를 만들어내는 요소가 된다. 또한 기린에 국한되었던 형상만이 아니라 다른 동물을 빌려 사람들의 이야기와 세상의 모순을 담고자 한다. 가령 <상동증>의 서사적 연출은 이전 작업과 달라진 지점을 드러낸다. 레일 위를 돌고 있는 2호선 전철 모형에는 얼음모형이 뒤덮여 있고 매직스컬피로 만든 북극곰 세 마리가 있다. 이 작업은 동물원의 좁은 공간에 갇힌 북극곰이 같은 장소를 반복하는 것과 같은 특정한 행동을 하는 ‘상동증’(일종의 정신질환)에서 모티프를 얻은 것이다. 인간에 의한 환경파괴로 녹조가 된 바다의 색이 몸으로 전이된 북극곰과 온난화로 녹아버린 얼음처럼 짓눌린 북극곰, 양동이를 뒤집어쓴 모습은 그들의 온전하지 못한 상태를 보여준다. 북극곰에 대한 연민에는 그들을 그러한 상태로 만든 인간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2호선 순환 열차를 타고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염두에 두었다. 상동증이라는 증상에 빠진 북극곰으로부터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반복된 삶을 유추하면서 사람들 또한 그런 증상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쩔 수 없이 흘러가는 것은 아닌지를 반문하다.
소조와 조각을 주로 하던 작가가 설치적인 요소를 작업에 활용하게 된 이유는 자신이 만들어 왔던 매체로는 현재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전달이 어렵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더 많은 세상의 이야기를 만나고 그것들을 응집하여 좀 더 펼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린에만 국한하지 않고 다른 동물을 대상으로 삼고 또 여러 상황이나 사건을 연출하는 것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좀 더 사회와 소통하고 자신의 조각이 확장되길 바라는 마음이 아마도 다른 매체로 눈길을 준 것인지도 모른다. 매체에 대한 확장이 작가가 바라보는 현상의 본질을 표현하는 것에 더 효과적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작가가 여러 방식의 작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와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고자 하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그간 작가는 동물의 형상을 빌려 그것을 변형하고 거기에 인간적인 삶과 숨을 불어넣음으로써 인간을 우회하여 표현하는 방법을 택했다. 물론 우화에서 기대하는 것과 달리 풍자나 비판이 명확하거나 복잡하지는 않다. 그에게 동물은 인간들의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선택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분신이거나 고립과 외로움, 불안한 사람들을 투영하기 위한 대상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놓인 현실로부터 자신이 느끼고 경험한 만큼을 그 대상에 표현하였고 그것이 누군가에게 편안함을 주거나 심정적인 위로가 되기를 바란 것이었다. 현재 작가는 매체의 변화를 시도하고 사회의 이야기에 더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 고립된 개인의 외부적 조건이나 심리적 불안을 넘어 사회와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